괴이한 시대 우리들의 분투기

김수정 한국여기자협회장

 정말이지 괴이한 한 해가 지나갑니다. 잠시 독감처럼 지나가리라 여긴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흔들고, ‘미투’ 이후 수년이 지났으니 이제 더는 없겠지 하던 권력형 성폭력, 온라인상의 성 착취 범죄가 한국 사회와 여성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디지털 미디어 혁신 작업이 지난하게 이뤄지는 와중에 우리가 다루는 뉴스에는 정치·사회의 부조리한 것들이 넘쳐납니다. 문득 2020년 제29호 <여기자> 책은 이 시대의 괴이함과 부조리함을 담아내는 풍속화, 그 속에서 싸우고 견뎌내며 오늘 이후 세상을 다지는 여기자들의 분투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자> 책 원고를 받고 보니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웃픈, 처절한 기록’ 이랄까요. 특집으로 다룬 ‘코로나 시대의 언론’ 말고도 이 글 저 글에서 코로나가 만들어 낸 짙은 그림자가 배었습니다. 소독제로 손과 발을 빡빡 닦아가며 취재한 코로나 현장의 이야기는 물론 국내외 연수기에도, 저 멀리 멕시코에서 보낸 특파원 칼럼에도, 남성 기자들이 써낸 육아 휴직기에도 말입니다.

 '반인반수'인 다섯살 아이가 건 헤드록에 몸을 버티며 기사 발제를 끝내야 하는 극한의 재택근무기, 코로나를 피해 멀리 친정에 아이를 맡겼다가 아래층 언니들로부터 우퍼 스피커 보복을 당한 기자 부부의 육아기는 눈물겹습니다. ‘팝카페’의 부재를 원망하며 '맘카페' 눈팅하고 당근 마켓에 쓰던 물건 팔아 아이 장난감 사는 맛에 빠진 남성 기자들의 육아 휴직기는 ‘코로나 블루’ 속 해학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바이러스를 뚫고 우리 여기자들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여성 편집국장과 여성 정치부장들이 잇따라 나왔는데, 이번엔 KBS 9시 뉴스 메인 단독 앵커를 여기자가 맡았습니다. 여성 정치부장도 세 명이 한꺼번에 탄생했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최초’ 수식어를 단 직책이나 중책을 맡았을 때 한 번씩 갖는 이 망설임은 곧, “내가 하지 않으면 여기자 후배들은?” “후배들 생각해서 이 악물고 해야지”란 각오로 바뀝니다. 경찰 ‘마와리’ 기자 때나 부장이 될 때나 기획 프로젝트를 맡을 때나 여기자들이 공통으로 갖는 마인드 프로세스인 것 같습니다. ‘여기자 그 후’ 코너를 꾸며준 최현수 전 국방부 대변인(전 국민일보 군사전문기자)의 절제된 글에도 그런 마음이 녹아납니다.

 미디어가 디지털로 진화하는 시기 그 최전선에서 ‘뉴 오브 뉴’ 를 외치며 싸우는 우리 여기자들의 얘기, 밀레니얼 세대의 창의성과 인권·젠더 감수성으로 무장한 프론티어들의 열정은 신선한 자극과 충전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하반기부터 국내 연수 프로그램에 ‘이화여대 사외이사 과정’을 포함했습니다. 여성이사제의 기회를 우리 여기자들이 활용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기업 경영 관련 공부를 하고 다양한 직군의 여성들과 알찬 네트워킹을 쌓는 좋은 기회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열공’ 에너지 넘쳐나는 다른 전문 고위직 여성들과 주말마다 학습투쟁을 벌이는 연수기도 담았습니다.

 지난여름 한국여기자협회는 성명을 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2차 가해’를 우려하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이었습니다. <여기자> 권두 특집은 수년간 이어진 지자체장들의 ‘권력형 성범죄’와 한국사회가 주제입니다. 이후 같은 주제를 다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요즘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손흥민 선수가 대세죠. 경기 모음 영상을 보다 보면 골 득점 만큼 제겐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이기든 지든 선수들이 끌어안고 등을 다독이고 얼굴을 동료 가슴팍에 묻으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입니다. 코로나 19로 관중 없는 텅 빈 구장에서 그들의 어깨동무는 더 따뜻해 보입니다. 바이러스와 부조리가 우리를 시험하는 시대입니다. 여기자협회 회원들이 자매애로 이 괴이한 시대를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어깨동무하시죠.